아이를 키울 수 있는 형편
나는 다행히 아이 하나 정도까지는 경제적으로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키울 수 있을 만큼의 형편은 된다. 하지만 둘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가난해 보이는 가정에서 아이가 두셋 이상일 때, 종종 “저런 형편이면 애초에 아이를 저렇게 많이는 낳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야? 본인 욕심에 아이들만 고생하잖아.”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타당한 말이다. 특히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넷, 다섯 자녀를 거느린 집을 보면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형편이 안되면 정말 아이 낳는 걸 자제해야만 할까. 가난하다고 아이를 키우는 기쁨(에 못지않은 고생도)을 그저 포기하라는 것은 언뜻 인권 침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제력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이 된다면, 머지않아 다른 많은 조건들이 그 기준의 하나가 될 것이다.
계산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개개의 형편을 고려해서 아이 낳는 것을 제한하라는 것은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닐 것이고, 약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아이를 가지는 것은 오직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만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듣기로 예전에는 많은 아이가 생산수단으로 기능하였으나, 지금은 사치재에 가까워졌기에 점점 아이를 가지지 않게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사치재라는 표현은 좀 서글프다. 아이를 생산수단으로 여기지 않을만큼 세상이 좋아졌다면, 딱 한 걸음만 더 나가서 아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약간의 복지로 모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형편이 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해야한다고 본다. 이는 단지 의무교육 동안의 교육비나 급식비 정도가 아니라 임신하는 순간부터 임산부에 대한 케어와 출산, 출산 후의 조리, 태어나는 순간부터의 아이에 대한 돌봄까지를 포괄한다.
- 교육제도가 개선되어야 할 필요도 분명히 있다. 시장으로 봤을 때의 교육은 분명 아이가 줄어들 수록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교육비는 아이가 적어질 수록 비싸지고, 비싸진 교육비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개인은 아이를 더 가지지 않으려는 악순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교육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취지에도 맞지 않고, 그럴만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다. 다만, 몇몇 잘 만들어진 게임처럼 배우기는 쉽고, 마스터하기는 어려운 방식의 교육 정책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싶다.
결론적으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개인의 경제력이 조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를 키워보니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행복과 기쁨도 무척 크다. 그렇기에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 대한 헌신과 행복만을 생각하고 가족에 대한 계획이 결정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