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Foundation


1.

워낙 판타지나 SF물을 좋아하기도 해서 파운데이션도 시간 여유가 되었을 때, 시리즈 전 편을 보았다. 감독은 파운데이션을 80여개 에피소드로 계획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즌 1은 아주 광대한 이야기의 도입부라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데, 원작소설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 흐름은 꽤 탄탄하다고 느꼈다. 다만, 본격적인 전개가 있었다기 보다는 계획을 진행 시키기에 앞서 말을 이리저리 필요한 곳에 옮겨두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다루는 세계의 크기 —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 자체가 워낙 넓다보니 어느 정도의 준비작업은 필요할 수밖에 없겠다.

2

사소하면서도 보다가 계속해서 거슬렸던 부분 하나는 여주인공을 “게일”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들리는데, 자막에는 항상 가알이라고 적혔던 것. 찾아보니 이름이 Gaal Dornick이니까,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가알 도닉이 맞긴하다. 그래도 들리는 소리와 계속 그 때마다 몰입이 조금씩 깨졌다.

첫 시즌에서도 첫 몇 화의 시간 구성은 조금 복잡하게 되어있다. 가알이 처음 시냅스를 벗어나서 수학자 —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을 창안한 — 해리 셀든을 만나는 시기를 기준으로 35년 후와 현재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중간에 한 번 19년 뒤와 현재 기준 400년 전을 보여주고 35년 후 시점으로 돌아가는데, 난 그 때 17년 뒤라는 자막을 봤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좀 헷갈렸다. 그 이후로는 시간도 어느정도 선형적으로 보여주기에 이해가 어려울 점은 없었다.

중간에 개연성이 좀 부족하다고 느낀 점은 하나 있었는데, 터미누스Terminus에 해리 추종자들이 정착하여 파운데이션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 아나크레온Anacreon 사람들이 터미누스를 점령하고 제국국 함선을 유인해서 파괴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무척 빈약해보이는 함포 한 발로 거대한 함선을 파괴해 버리는데, 제국의 기술력에 비하면 너무 함선 보호가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황제의 경우, 팔찌하나만 차고 있으면 거의 이십 층 위에서 땅에 떨어져도 타박상 정도에 불과할 정도의 방어막을 구성해줄 수 있는데, 전력공급도 빵빵해 보이는 저 커다란 함선에 그정도 방어장 구축이 안된다고?

3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서도 최소 1, 2만년은 지난 이후이다. 주 배경이 되는 제국의 역사가 12,000년 내외이고, 제국의 수도인 트렌터는 하나의 행성. 결국 하나의 행성이 통째로 하나의 나라 또는 도시가 된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더라는 것은 오래된 전설처럼 남아 있다.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서 각 행성에 도시를 건설하고, 수만 광년의 거리를 몇 시간 만에 여행을 할 수 있을만큼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배척받는 행성이 있고, 10조가 넘는 인구 중 대략 3조명이 열렬히 신봉하는 최대 규모의 종교가 존재한다. (그 말인즉 군소 종교를 포함하면 종교를 믿는이가 상당한 비율일거라는 뜻이다)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고,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그리고 반역죄를 물어 죄다 파괴해버리고), 광속을 뛰어넘는 여행을 하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신을 필요로 할까. 제임스웹 망원경을 궤도에 안착시키고, 화성에 로버를 내려보내는 시대에도 상당한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백신에 음모가 있다고 믿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 법 하다.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소의 껍질을 산채로 벗기며 본인의 영화를 기원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4

해리 셀든이 창안한 심리역사학은 수조명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집단의 미래를 예측하는 정교한 시뮬레이션 모델로 보인다. (그렇다고 입체로 표현되는 화려한 특수효과를 어떻게 해석하면 제국이 몰락하고, 수천년의 암흑기가 온다고 알 수 있을진 모르겠다.) 문제는 가알 도닉이 오기 전까지 그 모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창안자인 해리 교수 뿐이었다는 것.

해리 교수가 법정에서, 그리고 황제 앞에서 본인의 예측모델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령 고도로 정교한 과학이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오직 단 한명이라면 중세 이전에 신탁을 받고 예언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다만 다른 점이라면 예언이 상당히 개인화된 것이라고 한다면 해리 교수의 예측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에 위험이 온다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인지, 제국의 몰락이 정확히 어제 어떠한 모습으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 교수가 터미누스의 개척자들에게 닥칠 위기의 유형과 시기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영매의 예언과 어느정도 겹쳐 보이는 면이 있다. 해리 교수가 자살에 가까운 살해를 당한 이후, 당시의 기억을 모두 보유한 시뮬레이션으로서 존재함으로써 드라마에서는 좀더 신의 사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5

황제는 Dawn, Day, Dusk의 3인체제로 움직이며 Day가 실질적인 판단을 내린다. 보이기에 데이는 40 전후의 나이로 보인다. 더스크가 충분히 나이가 들어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면, 특수 장치를 통해서 산 채로 소각한다. 이 예식에서 더스크는 다크니스Darkness가 되고 돈과 데이는 각각 데이와 더스크가 된다. 유전공학을 통해 새로 태어난 아기는 돈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셋은 3대가 모여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태어난 시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이 똑같은 완전한 쌍둥이다. 이를 황제들은 유전 제국Genetic Empire라고 부르며, 원본 이후 400년간 실질적으로는 동일인이 거대 제국을 지배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러한 복제들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AI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처음이었던 황제의 유전자가 반역자들에 의해 오염되어,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 돈은 형제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작은 차이점들을 지니게 된다. 왼손잡이, 색맹 같은 것. 이런 사소한 차이는 돈을 두렵게 만든다. 그들은 때로 전임자들과 다르길 원하지만, 정말로 다른 것은 오류로 여기질 것이 뻔하기 때문일 것 같다.

그나마도 이미 몇 세대 전에 초대 황제의 유전자가 오염되었기에, 복구도 불가능하고, 이미 여러명의 전임자도 완벽한 복제는 아니다. 유전자의 오염의 제국을 몰락으로 이끌까. 제국에 충성하는 마지막 안드로이드는 더이상 동일한 유전자가 아닌 황제에게도 충성을 바칠까.

6

가알은 탁월한 수학자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무의식 중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스타브리지가 파괴되기 직전에 미리 그 쪽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자신이 체포될 것을 알기도 했다. 해리 교수가 터미누스를 맡기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리 교수도 레이치와 가알 사이에서 파생되는 인간적인 고뇌를 다 예측하진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 가알은 터미누스로 가지 못하고, 레이치를 대신해서 해리의 고향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도착한다.

가알은 해리의 우주선에서 본인의 능력에 대해 정확히 깨닫게 되고, 고향을 떠난 선택 이후 처음으로 독립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이 선택은 드라마에서 가알이 처음으로 해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그에 반대해서 내린 선택이다. 터미누스에서는 가알과 레이치의 생물학적 자식이 되는 샐버가 그곳에서의 위기를 해결하고, _영혼의 이끌림_을 따라서 가알을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이 마침내 만나게 되는 것은 무려 130년 정도가 지난 후이다. (만난 시점을 기준으로 둘의 나이는 엄마 뻘인 가알이 스물둘, 딸인 샐버가 스물 여섯 정도라고 한다. 냉동보관의 힘…)

첫 시즌의 마지막 화에서 가알이 처음 수학에 숨죽여 입문했던 고향별 시냅스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만난다. 시냅스는 그곳 사람들의 믿음이 부인했으나, 과학이 예측했던대로 해수면 상승으로 물의 행성이 되어 버린 후이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자신이 알던 흔적이 거의 모조리 사라져 버린 곳에서, 가알은 불시착해서 냉동 모듈에 잠들어 있던 샐버를 만난다.

7

이 시기의 가장 세가 넓은 종교의 가장 유력한 수장의 후보였던 자는 복제된 인간은 영혼을 갖지 않아,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며 황제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드라마는 황제에게 영혼이 없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드라마를 보며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1. 지금으로부터 수만년이 지나서 은하의 이편과 저편을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도 종교는 건재하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영혼을 믿을까
  2. 가알의 출신인 시냅스도 결국은 지구에서 이주해온 누군가가 개척한 행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과학의 힘을 경험한 사람들이 온 것일텐데, 그걸 기반으로 발전해온 후손들은 과학을 배척하는게 말이 되나
  3. 해리 박사는 자신의 모든 기억과 생체정보를 특정 기계로 전송하여 홀로그램의 형태로 나타나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경험을 해 나간다. 이러한 복제가 최소 두 개는 존재하는데, 이 둘을 진정 해리 박사로 생각할 수 있을까. 황제는 유전자를 복제하고, 해리는 기억을 복제했다.
  4. 과학의 기본은 검증 가능성이다. 심리역사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해리 박사 본인 뿐이라면, 심리역사학을 과학의 범주에 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과학의 결과가 수천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라면, 예측과 결과를 비교하여 검증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