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소녀(Cursed)를 보기 위해 견뎌야할 몇 가지 아쉬움
영화든 드라마이든 판타지 배경의 작품도 꽤 좋아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그래도 어느정도 즐기는 편이다. Netflix에서 제작한 위처도 나름 재미있게 봤고, 이번에 저주받은 소녀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인기순위에서도 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등록된 첫 시즌을 모두 보았다.
배경/소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하고자 하지만, 완전히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려워 보이니 곧 드라마를 볼 생각이 있다면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드라마에 처음 호기심을 가진 것은 이 이야기가 아서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아서왕의 전설에 관심 한 번 가져보지 않은 사내가 몇 이나 될까. 이야기의 세세한 내용은 몰라도 아서왕과 멀린, 란슬롯과 원탁의 기사들, 엑스칼리버 정도는 다 알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물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일종의 프리퀄이라 생각하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페이 족이라 불리는 종족(요정fairy라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이 이야기의 한 축이고, 주인공 뿐아니라 멀린도 여기에 속한다. 이 페이족은 다시 세세하게 하늘민, 뱀족, 사슴족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인간에게 밀려서 숲속, 늪지대, 동굴 속으로 밀려나지만 정화를 목표로 페이족 마을에 들이닥쳐 모두를 학살하는 교회 세력에 의하여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주인공이 살던 마을도 이 살육에 내던져지고, 겨우 살아남은 주인공이 어머니가 전해준 검을 들고, 어머니의 유언을 쫓아 멀린을 찾아나서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몇 가지 거슬리는 점들
시즌 1은 한 시간 분량의 에피소드 10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뜻 사건이 꽤 급박한 듯 하지만 사실 그다지 많은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마지막까지 보고나면, 시즌 1은 시즌 2 이후를 위한 장대한 예고편이라는 느낌이 들긴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단지 아래에 설명할 다른 아쉬운 점들과 겹쳐져서 시즌 2부터는 그다지 보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만약 내가 말한 거슬리는 점들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면 시간을 한 번 들여서 볼만은 할 것이다. 나름의 아기자기한 맛은 있다.
1. 조금 과도하게 느껴지는… 정치적 올바름
일단, “아서왕의 전설”의 변주임에도 불구하고 아서가 흑인이다. 카톨릭이 갓 전파된 고대 영국이 배경인데, 거기에 흑인이 살았던가? 페이족 중에 아시아 계로 보이는 배우나 흑인으로 보이는 배우가 있지만,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서왕이? 보다보면 적응이 되지만, 초반에 몰입을 막는 요소인 것이 사실이다. (한참 동안 저 아서는 아서왕의 아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 중 주요 배역은 멀린부터 우서왕, 그리고 아서에 이르기까지 두엇을 빼면 모두 얼간이들이다. 반면에 주요 여성은 주인공인 니무에와 아서의 여동생과 페이족 조력자를 비롯하여 모두 자기 몫은 거뜬히 하는 멋진 이들이다.
2. 개연성이 부족하다
꽤나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당연히 지금 우리보다 여러가지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위생에 대한 것이라거나 몇몇 과학 상식들 같은 것. 그런 것은 우리가 더 많이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시절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어리석지는 않다. 고작 1,500년 전의 사람들이면 지금 우리보다 되려 더 현명한 구석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드라마에서는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러다보니 개연성도 부족하다 느껴지고, 몇몇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예컨데, 위핑멍크는 대부분 홀로 움직이면서 페이족을 죽인다. 정황상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위핑멍크와 그 상관의 명을 받는 붉은 팔라딘들이 어린 페이족을 죽이는 장면도 여럿 보였다. 그런데 위핑멍크가 갑자기 거웨인에게 감화를 받았는지, 어린 아이를 고문하려한다는 이유로 붉은 팔라딘을 배신하고, 어린 페이족 아이를 구해서 달아나는 것. 그 긴 드라마에서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단 한 회만에 이루어진다.
3. 검과 마법
판타지 물의 꽃은 화려한 마법이다. 그리고 호쾌한 액션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는 둘 다없다.
일단 검과 창과 활과 여러 둔탁한 무기를 들고 다투는 장면은 물론 여럿 나온다. 하지만, 세련된 액션이 아니다. 특히, 주인공 니무에가 무적의 검의 힘을 빌려 검을 휘둘러 적을 벨 때는, 니무에는 칼 무게를 못 이겨서 이리저리 휘청이듯 겨우 휘두르고, 드라마 상의 적들인 붉은 팔라딘은 친절하게 기다렸다가 칼에 몸이 갈라져 준다.
그나마 검을 잘 쓰는 것으로 묘사되는 캐릭터가 몇 있다. 위핑 멍크, 그린 나이트 등. 하지만 이 둘이 검을 맞대는 것은 극히 드물고, 그나마도 역량차이가 많이 나서 위핑 멍크가 이리저리 통통 튀면 누구든 쓰러지거나 죽는다. 그러니 아슬아슬한 몰입감이 역시 없다.
마법의 측면을 보자면 상태가 더 심각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멀린이 마법을 잃어버린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멀린이 이 드라마의 유일한 마법사라는 점이다. 니무에도 물론 신비로운 힘이 있지만, 나무나 풀 때기 좀 움직여서 사람 괴롭히는 수준이고, 화면에 초록색이 한 가득인 상황에서 다른 초록색이 뱀처럼 스슥 움직이다보니 별 티가 안난다.
그 외에는 마법이랄 것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10화에 가면 10화의 거의 마지막에 멀린이 마법을 되찾아서 5분 정도 마법을 좀 쓰는데, 엄청 공을 들여서 길게 주문을 외우고는 달려드는 두어명에게 불도 붙지 않는 번개를 한 줄기씩 떨어뜨린다. 영 별 게 없다. 멀린 스무 명이 있어도 볼드모트는 커녕 스네이프하고 싸워도 질 것 같다.
판타지 물에 으레 기대하는 화려한 볼거리가 없다보니 마지막화를 보고도 맥이 좀 빠진다고 해야하나.
그러니,
판타지 영화/드라마의 엄청난 팬이며, 내가 위에 말한 점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면 한 번 쯤은 볼만하지 않을까.
드라마라기 보다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그래서 아서왕 전설을 — 약간 따분할지라도 — 좀더 현실적으로 재구성해서 변주한 시리즈물이라고 생각하면 나름의 재미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 측면에서는 10화에서 정체가 밝혀지는 랜슬롯과 퍼시발. 다시 검을 손에 넣은 멀린과 계곡에 떨어진 니무에와 꿈을 이룬 아그네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시즌 1을 보고나니 그 호기심에 다음 시즌을 보기에는 시간이 좀더 아깝다 느껴지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