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 올리버 색스


접점

올리버 색스는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에서 진행한 과학책이 있는 저녁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과 함께 소개해주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듣던 당시에는 다른 것보다도 책을 통해 소개되는 기이한 정신병적 증상을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으레 그렇듯이 기회가 되면 책을 한 번 사봐야겠다는 생각만 품고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리버 색스가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시간이 더 지나면 그의 책을 읽을 생각도 하지 못할지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전자책으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 편두통, 온더무브를 구입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꽤 쉽게 읽혔다. 그가 치료 또는 상담을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환자들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살짝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풀어준 것이다. 한 편 한 편 그의 글을 읽다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려 깊은 배려, 그리고 단지 화학적, 생체적인 분석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를 통해 병을 원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어떤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어쩌면 가느다란 줄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나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들고 있는 길고 무거운 장대가 내 중심을 잘 잡아 주겠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

이 책에서도 저자는 여전히 사려깊고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책 자체가 그리 친절하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책의 옮긴이도 책이 어렵고 모호한 부분이 많았음을 맨끝 옮긴이의 말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쩌면 올리버 색스도 아직 편두통의 모든 것을 알아내지는 못한채, 탐구를 계속하면서 책을 썻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것은, 앞서 읽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비해서 사례에 대한 서술은 매우 간략하고, 뜸한 반면에 전문 용어가 무척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편두통을 겪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짐작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편두통 그 자체에 대하여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도 굳이 편두통을 자세히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지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것 이상으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올리버 색스가 상담 또는 진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차례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편두통이라는 병증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편두통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편두통이 발병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사람이 겪는 일, 편두통의 원인과 이를 고려한 여러가지 치료방법 및 그 역사, 편두통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에 대한 본인의 생각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례는 환자들이 편두통을 겪는 동안 보는 환각 등을 그린 도식과 함께 환자의 증상과 특정 치료를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짧고 건조하게 기록해 둔 것이다.

편두통

나는 이라는 한자가 어느 한 쪽을 뜻한다고 이해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편두통이라는 증상은 그저 머리 어느 한쪽이 국소적으로 아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굳이 이름이 따로 붙은 것은 그 한 쪽만 아픈 증상이 꽤 흔하고 통증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이게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는 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어느 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통해 이해하기로 편두통은 화학적 또는 전기적인 신호의 교란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여러 증상 중에서 어느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복부 편두통이니 하는 식으로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이 아픈 경우도 있다.

편두통이 일어날 때의 증상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지는데, 편두통 아우라(Aura)라고 불리는 일종의 전조 증상과, 여기에서 이어지는 극심한 발작과 고통, 그리고 고통에서 회복되며 증상이 마무리된다. 일주일에도 여러 번 발작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고, 몇 주, 몇 달, 또는 몇 년에 한 번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증상에 있어서도 순식간에 극심한 고통에 빠지고, 여러가지 환시/환각을 겪다가 두어 시간 이내에 마치 죽음에서 부활하듯이 회복하여 넘치는 에너지와 상쾌함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몇 시간이 넘도록 지리하게 이어지는 고통을 겪고, 고통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진이 빠져서 꼬박 며칠을 고생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은 편두통 아우라이다. 간질의 발작과 비교할만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다르다. 책을 기준으로만 생각하자면, 간질은 주로 신체적인 반응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에 비하여 편두통 아우라는 신체적인 반응에서부터 환각/환시 등 감각적인 것을 거쳐 마침내는 어떤 종류의 고양감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보이며, 시작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길면 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길게 늘여놓은 간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면의 작용은 크게 다른 것 같다.

그 치료법은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으나,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든 환자에게 통용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은 약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환자가 편두통을 겪는 주기나 환자가 느끼는 심각한 정도, 어느 수준까지 증상이 진행되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는 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편두통의 치료라는 것은 그냥 그렇게 증상을 없어지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편두통만이 아니라 정신이 관여되는 많은 병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치료

위에도 간략히 썼듯이 편두통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병의 진행과 환자가 겪고있는 수준에 맞춰서 적당한 약을 쓰면 상당부분 그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약을 먹는 방법도 내복하거나 주사제로 맞을 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미리 약을 먹거나 증상이 시작되는 초기에 주사를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법을 통해서 어느정도는 편두통이 완화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편두통 증상을 없애는 것 만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치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도 몇 달 길면 2~3년 후에 다시 증상이 강화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원래 있던 편두통이 없어진 대신에 그 시간에 다른 종류의 발작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병이 사라진 자신에게 적응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편두통처럼 삶의 어느 순간을 가져가는 병은, 그 병으로 앓아온 시간이 오래될 수록 삶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그래서 마침네 그 증상을 완화하거나 자신의 삶에서 제거했을 때, 어떤 이들은 그 병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과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

예전 매일같이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 정도가 되는 여자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6시 제 시간에 약속도 없이 퇴근을 해서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집에 와 본 적이 없어서, 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티브이를 켜두고 멍하니 보고만 있다가 11시에서야 문득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아 맞아. 씻고 자야지”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병과 치료에 대한 관점에서도 색스의 사람에 대한 따스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정신병적 증세가 있는 것을 그 증상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않고, 병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해소하고자하는, 또는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단순히 병인을 제거하는 것을 치료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병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대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급박하게 움직이는 도시에 갇혀서 강한 스트레스에 눌려 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원래의 수명을 넘어서서 아주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전적으로 정해진 인간의 자연수명은 마흔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건강한 삶을 추구하되, 거기에 강박을 가지지는 말자. 내가 가진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을 가지게 된 근원을 탐구해야겠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병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은채로, 그 병을 품고 더 건강한 삶을 향해 살아내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