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ing Things Done을 읽고


David Allen이 쓴 GTD를 읽고 나서 처음에는 GTD 입문을 위한 가이드 비슷한 것을 써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Clien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잘 정리된 글이 있고, 기술적인 것은 일단 GTD를 적용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으면 얼마든지 찾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책 자체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시작하며

Getting Things Done: The Art of Stress-Free Productivity(이하, “GTD”)는 2002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제목으로 2011년에 번역서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번역서로 읽어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번역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영어로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싶으시면 원서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3월에 개정판이 나와서 처음 책이 나온 이후 10여년 간의 사례와 스마트폰 등에 대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GTD의 핵심 아이디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개념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삶의 많은 측면이 디지털화된 내 삶에 GTD를 적용해 보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왜 GTD를 읽었나.

사실 GTD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4~5년 전 아이폰을 처음 사고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이리저리 앱들을 구경하다가 2Do라는 앱을 처음 구입했고, 그 다음에는 호기심에 Things를 구입해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면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근거하고 있는 GTD가 뭔지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조금 뒤져봤고, 나름대로 GTD를 이해하긴 했습니다만, 그 깊이는 사실 매우 얕아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그 때 그 때 적어뒀다가, 시간 날 때 ‘컨텍스트’라는 것에 맞춰서 정리를 하고, 시간이 되면 하면된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나름 앱을 활용한다고 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일을 미루고, 깜박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며, 뭐가 잘못되었나 고민만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David Allen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GTD의 개정판 혹은 후속작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이 모든 일들의 뿌리가 된 책을 직접 읽어봐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두어달 전에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해 내어 봤습니다.

GTD라는 철학

사실 GTD는 많은 부분이 다가오는, 갑자기 생겨나는 할 일을 처리하는 기술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맞닥뜨린 이 수많은 일들과 내 삶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GTD에서 강조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GTD는 프랭클린 코비의 “중요한 것을 먼저하기”의 방식과 대비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트레스 없는 생산성의 향상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분명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쓸데 없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이 미뤄둔 할일, 막상 할 수 있을 때는 생각이 안나다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생각이 나서 신경 거슬리는 일들, 하긴해야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답답한 그런 일들에서 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GTD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일단 가장 처음이 중요한데요. 저자는 최대 이틀 정도는 비워둘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틀 정도 다른 일은 비워두고 지금 필요한 일들을 적어둡니다. 디지털 시대니 물론 여러 할 일관리 앱이나 메모앱을 이용해서 적어둘 수도 있고, — 저자가 권장하듯이 — A4 사이즈 종이 한 장에 할 일 하나씩을 적어서 나름대로 정해둔 임시 박스 (또는 Inbox)에 담아둡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인다고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은 모두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 2분안에 — 끝 낼 수 있는 일이면 바로 끝내버리고 다음 일로 넘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적어둔 일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적당한 곳에 분류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 (Context)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집? 회사? 마트에서? 노특북이 꼭 필요할까? 아이패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되겠지? 그리고 언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정해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내가 적절한 상황, 이 일을 해야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프로젝트(Project)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기에 프로젝트라하면 최소 2주 이상은 걸리고, 참여하는 사람이 여럿에 할일도 잔뜩 있어야 될 것 같지만 저자가 정의하는 프로젝트는 이와 다릅니다: 일을 완료하는데 두 개 이상의 행동이 필요한 모든 일들.
일을 완료한다는 것은 지금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욕실이 더럽기 때문에 욕실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욕실 청소를 하는 것도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지요. 청소를 하려고보니 솔과 세제가 없다면 먼저 솔과 세제를 사고, 실리콘의 곰팡이나 물 때가 낀 곳에 세제를 뿌려두고, 몇 시간 뒤 솔로 문지르는 일들이 각기 다른 행동으로 하나의 프로젝트(욕실을 깨끗하게 만든다)를 완료하는 것입니다.

주의해야할 것 중의 하나는 행동을 적당한 수준에서 잘 쪼개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욕실 청소라는 프로젝트를 프로젝트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욕실 청소라는 하나의 행동으로만 생각한다면, 매번 일요일 아침에 청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집에 솔과 세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으로 미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가 더 생깁니다. 여러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을 하나의 할일로만 둔다면 조금 지칠 때 간단한 행동을 처리해 두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될 때 복잡한 일을 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언제나 그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그 일을 완료하기 위해서 해야할 그 많은 행동의 양에 압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일을 미루는 겁니다. 저처럼…)

그리고 일을 잘게 쪼개 둘 때의 다른 장점 하나는 —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일을 하나하나 끝내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해도해도 끝나는 것 같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나씩 할 때마다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실 우리들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중요한 측면을 놓치지 않는 것

GTD의 방법론을 프랭클린 코비의 방법론과 비교하면서 하는 말 중의하나가

프랭클린 코비는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그 우선순위가 가장 높을 일을 먼저하는 것인 반면, GTD는 중요도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밀려오는 주니어 레벨에서는 GTD가 적절하지만, 해야할 일이 많은 와중에 여러 일의 우선 순위를 살펴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고위의 사람들에게는 코비 방식이 더 적당하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GTD 방식이 그저 눈 앞의 일들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해야할 일들을 떠올릴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일이 완료되었을 때의 이상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입니다. 먼저 완료된 모습을 떠올린 다음에 이 목표에 닿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역순으로 찾아내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히 GTD에서도 지금 중요한 일 또는 프로젝트를 덜 중요한 것들과 구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실 지금 급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적당한 때에 할 수 있게 시간을 정해두거나, 아니면 _언젠가 할 일_정도로 따로 빼 둘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도 Vision, 목표, 프로젝트 등등으로 내 주변의 일들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일종의 필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달성해야할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어야 할 프로젝트들을 정의한 다음에, 각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정의해서 적당한 컨텍스트나 날짜에 분류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를 통해서 일뿐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중요한 일에도 좀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치며…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이 더 여유롭고 생산적인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자기 책은 여러 번 읽어야하고 읽을 때마다 배우는게 있을 거라고 자랑하네요) 일단 저부터도 책을 거의 다 읽은 시점부터 회사 업무가 시즌에 들어가서 제대로 체계를 갖춰볼 생각은 아직 못해봤어요. 1월 정도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 책을 읽은 뒤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2분 법칙과 **다음 행동(Next Action)**이라는 원칙입니다. 2분 법칙은 위에 잠깐 썼듯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미뤄두지 말고 처리해버린다는 것(반드시 2분일 필요는 없습니다.)이고, 다음 행동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프로젝트를 종료하기 위해서 지금 이 행동이 끝나고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두겠다는 것입니다.

한 때 여러 종류의 자기 계발서에 탐닉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런 책은 읽을 때만 그럴 듯하고 읽고 나면 허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읽을 때는 좋은 말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지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지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만들어 낸 방법론을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을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컨설팅하면서 얻은 임상 지식을 풀어둔 책이기도 하기에, 그 원칙을 상대적으로 쉽게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이 방법론을 적용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할 일들의 체계를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고, 실제로 완전히 습관화되기 전에는 자꾸 이 일 자체를 미루고 싶어집니다. 저자도 이 방법론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은 몸에 익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을 통해 기존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좀더 적극적으로 내 주변의 여러 일들을 처리하도록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게 되는 점에서 단기적인 가치도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