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카르타
크레마 카르타예전부터 킨들 페이퍼화이트를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간히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이북 전용 단말기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1. 킨들은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만 읽을 수 있어서 활용도가 떨어지고, 2. 그간 국내에서 발매된 단말기의 경우, 사후 지원이 빈약하다는 평가가 많았고, 3. 인터넷 서점마다 독자적인 규격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 인터넷 서점이 아마존만큼 큰 규모로 장사하는 곳이 없다보니 읽고 싶은 책을 구해 보려면 이 서점 저 서점을 기웃거려야 된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사소한 이유로, 아직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을 사서 평생 — 계속 읽지는 않더라도 — 소장할 수 있는가 생각해 봤을 때, 불안감이 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책정된 가격도 좀 비싸게 느껴지긴 합니다. 예전 올레 이북 사건의 경우에도, 일부 서적이 타 기업으로 이관된다고는 했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면 정작 자신이 구매한 책은 거의 대부분 이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제법 있었습니다. 종이책은 내 실수로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평생 간직할 수 있고, 중고로 팔 수도 있는데 반해 전자책은 그냥 허공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 아직 제대로된 가치를 인정해 주기는 약간의 껄끄러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전자책 단말기에 큰 관심이 생겼는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전자책 시장에서 나름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리디북스에서 전자책 단말기를 출시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소프트웨어이지만) 사후지원이 빠른 리디북스에서 직접 단말을 판다고 해서 꽤 반향이 있었고 저도 이 기회에 하나 사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만, 출시 당일의 업무 처리는 꽤 실망스러웠습니다. 저야 — 비록 1분이지만 — 제가 늦게 들어갔다고 해도, 그 외에 꽤 많은 사람들이 구매에 실패를 했고, 추가 물량을 언제쯤 확보할지도 불확실. 그래서 그 전에 몇 번 고민해본 제품 중에서 가장 최근에 출시된 크레마 카르타를 구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크레마 카르타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작들의 경우 사후지원이 나빴다고는 하지만, 벌써 세 번째 시리즈이니 나름의 노하우는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후지원을 하지 않더라도, 현재 상황만 잘 유지되도 써볼만 할 것 같다.
- 리디북스와 달리 루팅없이도 열린서재를 지원한다는 점. 아마존에서 산 책이나 인스타페이퍼 등의 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리디북스도 별도로 앱을 설치해서 사용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 기반이 된 하드웨어도 꽤 호평을 받은 제품이었고, 전자잉크 디스플레이의 품질은 리디북스의 제품과 큰 차이가 없다.
- 배터리는 절반정도 수준이지만, 전자잉크 특성 상 배터리 소요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구매해서 현재 한 달 가까이 사용 중이고, 현재까지는 나름 만족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인상
택배박스를 열어보면 이런 박스에 들어 있는데, 박스의 만듬새도 좋은 편입니다.
전원이 꺼져 있는 화면.
시계 방향대로 와이파이를 설정하는 화면과, 펌웨어 업그레이드 항목이 나타나 있는 것, 제품의 뒷모습과 재부팅 중이 화면입니다.
제품은 단단한 느낌이 들고 만듬새가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무게도 적당해서 그만한 분량의 종이책을 들고다니는 것에 비해서 당연히 훨씬 가볍습니다. 보통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그냥 한 손으로만 들고 있어도 2–30여분 동안 팔에 피로감은 없습니다. 화면의 해상도도 좋은 편입니다. 저는 요새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을 가장 낮은 글씨크기로 맞춰서 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가 뭉개져 보이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화면 뒤에서 빛을 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눈도 훨씬 덜 피곤하구요. 단말기를 보다보면 마치 신문지에 인쇄된 종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배경색도 딱 그 정도 입니다.
열린 서재를 통해 다른 전자책 앱을 설치하는 과정도 어렵지 않아요. 인터넷에서 apk 파일을 찾아서 다운로드 한 다음에 크레마 카르타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크레마의 루트 폴더에 복사하는게 첫 번째 입니다. 그 다음에 크레마의 홈버튼을 살짝 눌러서 열린 서재 메뉴를 선택하면, 루트에 복사된 apk 파일을 통해서 앱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계정에 로그인하시고 잘쓰면 됩니다. 다만, 저는 아이폰, 아이패드만 있고, 안드로이드 기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apk 파일을 구하기 쉽지 않은데, 역시 찾아보니 apk만 모아둔 사이트가 있습니다. 처음에 좀 불안하긴 했는데, 딱히 바이러스 같은 건 없는 듯하네요. 그리고 재밌었던 것은 리디북스의 경우에는 홈페이지에 가보면 화면 종류 별로 apk 파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전자잉크용 apk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했고, 리디북스가 그래도 고객 지원이 좋긴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사용해보니..
일단 저는 크레마를 사용하면서, 기본 리더는 전혀 사용하질 않았습니다. 크레마는 한국EPub 인가하는 인터넷 서점 연합체에서 만들어서, Yes24, Aladin 등 5개 서점의 전자책 리더를 기본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저는 아마존, 인스타페이퍼, 리디북스 앱을 설치하고 이것들 위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리디북스 앱도 한 번 켜보기만 하고 써보진 않았네요. 밑에서 설명할 부분들은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화면에서 글을 보여주는 기능에 대해서는 만족합니다. 요즘에 나오는 어느 제품이나 비슷하겠지만, 해상도도 상당히 높아져서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종이에 인쇄된 듯한 느낌을 주고, 배경의 약간 누리끼리한 것도, 예전의 페이퍼백 느낌이 들어서 나쁘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탔을 때나, 자기 직전에 단말기의 자체 조명을 켜고 책을 한 번 읽어봤는데, 물론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한 곳에서 불빛을 보다보니 눈에 약간 부담스러운 것은 있지만, 휴대전화의 디스플레이를 볼 때와 같은 눈의 피로감이나 통증은 없었고,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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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일단 하나의 앱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은 없습니다. 한 번에 오래 읽을 일은 잘 없었지만, 닫아놨다 다시 열어서 읽고 해도 앱이 꺼져버리거나 단말기가 다운되거나 하는 일은 아직 없었습니다. 한 앱에서만 머물러 있다면요. 다른 앱으로 왔다갔다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나는 현재는 아마존에서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 거의 그것만 보긴 하는데, 가끔 인스타페이퍼를 켤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앱이 중지되었습니다”**라는 창이 뜨면서 해당 앱은 그 이후로 열리지 않습니다. 다시 그 앱을 켜려면 기계를 완전히 껐다가 켜야 되요. 다행히 리부팅은 쉽습니다.
최근에는 아마존과 인스타페이퍼 양쪽에서 앱 중지 에러가 발생하고 몇 번을 껐다 켜도 앱이 실행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말기를 초기화하고 앱들을 새로 깔았더니, 회복되었네요. 다행히도 한 번 루트에 복사했던 apk 파일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초기화하고 새로 설치하는 것은 조금 귀찮기는 해도 어렵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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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수명
전장잉크는 잘 아시겠지만, 처음 화면을 띄울 때만 전력을 소모하고, 그 다음에는 전력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배터리도 상당히 오래가는 편이고, 크레마도 그런 면에서 배터리가 꽤 오래가긴 합니다. 다만 가끔 배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 때가 있어요. 처음 한 번은 인스타페이퍼에서 새로고침을 했다가, 새로고침이 완료되지 않고 지속되는 오류가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대략 40% 정도의 배터리가 남아있었는데, 다음 날에 보니 꺼져 있네요. 그 외에는 배터리가 문제라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다만 기본이 아닌 3자 앱 위주로 쓰다보니 최적화가 제대로 안되어서인지 배터리가 생각보다는 좀 빨리준다는 기분이에요. 실제 책을 읽는 시간 기준으로 78시간 정도면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정확하게 측정해본 것은 아니라서 확실하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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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세서리
알라딘에서 크레마 카르타를 구입했는데, 제가 구매할 때 기준으로는 케이스도 같이 세트로 팔았습니다. 인조가죽 내지는 패브릭 느김도 나는 지갑형 케이스인데, 예스 24에서 세트로 구매하는 것보다 만원 더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크레마는 아이패드와 유사한 스마트 커버 기능을 제공해서 이 케이스의 뚜껑을 덮어두면 화면이 꺼지고, 뚜껑을 열 때 화면이 자동으로 켜져서 꽤 편리합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화면을 세워둘 수 있는 거치대도 있습니다. 가로세로 화면 전환도 안되면서 이런게 왜 달려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옆으로 누워서 볼 때, 저렇게 세워두면 나름 편하겠다 싶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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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 몇 가지
- 아마존이나 인스타페이퍼는 애초에 전자책이 아닌 안드로이드 기기를 대상으로 앱을 만들었기 때문에, 화면을 전환할 때, 글자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휙휙 넘어가 듯이 전환됩니다. 전환 속도 자체는 빨라서 크게 거슬리는 것은 아닌데, 기계가 빠른 편은 아니다보니 좀 보기는 안 좋죠. 배터리 소모의 주범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홈버튼을 지긋이 누르고 있으면 백라이트가 켜지거나 꺼집니다. 전 그전에 이걸 몰라서 계속 화면 상단바가 나오게 하고, 상단바를 눌러서 조명 스위치를 켰어요. 조명 밝기를 조절하려면 여전히 이 방법으로 들어가야하긴 합니다.
- 인스타페이퍼에서 주의할 사항: 설정에 들어가서 몇 가지 세팅을 취향대로 바꿀 필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advanced 메뉴로 들어가는 것은 주의하세요. 한 번 들어가면 단말기를 껐다 켜기 전에는 나올 수 없어요. 아마도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면 나올 수 있겠지만, 우리의 크레마에 그런 번잡한 물건은 달려있지 않습니다.
결론
“나는 정말 리디북스에서만 책을 사서 읽고,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런 분은 리디북스 페이퍼를 구매하는게 마음 편할 겁니다. 크레마에도 리디북스 앱을 깔고 책을 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기본으로 제공되는 기능이 아니라면 어딘가에선 불안정하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루팅에 거부감이 없고, 리디북스에서 나온 단말기가 좋다고 하시면 당연히 리디북스에서 구매하셔야죠.
하지만, 저처럼 전자책 단말기에 처음 입문하고 안드로이드의 루팅 등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리디북스나 특정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한 책뿐 아니라 다른 서점 또는 서비스의 글도 읽고 싶으신 분들께는 크레마가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사용하기도 어렵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 (껐다켜기 또는 초기화)도 단순한 편이어서 골머리 앓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부분들도 있지만,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주리라 희망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