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화면이 기억나는 영화로 한 번 씩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는 했는데, 마침 여자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핑계로 나도 다시 이 동화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은 영화 제목에 나왔듯이 월터 미티, Life라는 잡지사에서 네거티브 필름 현상 전문가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철이 든 후로 꽤나 삶을 재미없게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자기만의 망상에 빠져든다. 영화에서는 멍때리기 (zoomed-out)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사건이 시작되는 이 영화의 시작부는 약간 지루하다. 월터의 망상은 만화적인 재미가 있지만, 너무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리고 끝도 지극히 평범하다. 이 영화의 끝에서 어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회사에서 잘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평범하고 언뜻 지루할 수 있는 시작과 끝 사이에서 우리의 주인공 월터는 그가 이제껏 해왔던 망상보다도 훨씬 더 상상같은 현실로 뛰어들어간다. 아마 영화에서 의도한 것일테지만, 이 모험의 시작은 마치 그의 또다른 멍때리기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그린란드에 도착하고나면, 아 지금 그는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가 여행을 떠난 이후로 그는 망상을 시작해도 멍하니 있지 않는다.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 셰릴에 대한 망상은 되려 그가 용기를 내서 주정뱅이가 운전하는 헬리콥터에 뛰어오를 수 있게 해주니까. 그리고 점점 월터가 상상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마침내 없어진다. 한국어 제목처럼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기보다, 나는 이제 그가 더 이상 망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애초에 그가 망상을 했던 것은 팍팍한 현실 너머를 갈망해서인데, 이제 그 너머를 직접 겪었으니 망상이 필요없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모험 끝에 그가 발견한 것은 사실 지극히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그의 인생이 사려깊은 어떤 사람의 눈에는 삶의 정수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보면서 더 빠져들었던 것은, 지금 나도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어떤 용기를 내서 지금까지 내가 그래왔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 보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매일 핏빗을 차고 다니는데, 요 일주일 정도는 평소 심박수가 100을 넘나든다. 그 전에는 보통 5660, 높아봐야 70 정도였다.) 매순간 약간씩은 긴장되고 불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잘해나가는 것이라고 믿어본다. 그 와중에 이 영화는 지금 내 상황과 맞물리며 내게 큰 응원이 되었다.